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M. 79 (문단 편집) === [[제2차 세계대전]] 中, 폭격기로서의 활약상 === 간단히 요약하면 이탈리아군의 선봉이라고 할 수 있다. 넉넉한 항속거리와 적절한 폭장, 적절한 속력의 3박자로 언제나 이탈리아군이 가면 하늘에 나는 존재로 공군에서 사실상 '망할 곱추' 니 '빌어먹을 굽은등짝'이니 까였지만 지상군의 참 딱한 화력탓에[* 야포는 [[제1차 세계대전]]때 쓰던 것이고 전차는 [[M11/39]], [[M13/40]] 등을 참고하면 알 수 있듯이 성능이 매우 좋지 않았다. ] 날렵한 창공의 스파르비에로([[새매]])로 칭송받는 존재였다. 50kg 폭탄 12발을 퍼부어주고 적 토치카에 250kg 폭탄을 투하해주는 몇 없는 고화력으로 당시 이탈리아는 적절한 [[공격기]]나 [[급강하폭격기]]가 없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은 SM. 79뿐이었다. BR.20 치코냐나 SM. 82 피피스트렐로는 너무 느려서 지상포화에도 잘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. 첫 등장은 [[프랑스 침공]]때였고 복엽기인 [[CR. 42]]의 호위를 받고 프랑스군을 폭격했다. 프랑스가 아주 빠르게 항복했기 때문에 프랑스 공군과의 교전같은 것은 없다. 그 다음은 [[유고슬라비아 침공]]이었다. [[알바니아]]에서 이륙했고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광속으로 [[유고슬라비아]]가 항복해서 유고슬라비아 공군 소속 SM. 79를 [[노획]]하기도 했다. 그리고 이탈리아의 삽질인 [[그리스 침공]]이었다. 이탈리아 육군은 고전을 했으며 SM. 79는 폭탄만 쏟아붓고 다녔다. 일단 지금까지는 SM. 79의 전성기나 다름없었다. 드디어 SM. 79는 적수를 만났다. 바로 [[북아프리카 전선]]에 투입되면서다. 당시 영국군은 [[호커 허리케인]]을 주로 운용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SM. 79의 날렵함이 빛나게 되었다.[* 그마저도 사선안에 들어가면 분쇄되기 십상이었다.] 특히나 적절한 항속거리는 전장과 다음 전장의 거리가 먼 아프리카에서 유용했으며 이점은 독일군도 좋게 보았다. 물론 당시 아프리카 사단은 항공기가 몇 대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 폭격기를 깔 수 있는 상황은 아니였더라도 몇 없이 우호적으로 본 이탈리아 무기였다고 한다.[* 전투기는 많이 깠다고 한다. 애초에 독일군 입장에서 보면 멀쩡해보이는 전투기는 [[MC. 202 폴고레]]'뿐'이다.] 하지만 전성기도 미제 [[P-40]]의 대규모 등장으로 끝났다. 영국은 북아프리카에 많은 전투기를 보낼려고 노력했는데, 마침 미제 키티호크를 수입하는 게 스핏파이어 1대 생산가격의 5분의 1수준이라 많이 수입해 왔는데, 후질구질한 전투기가 많은 이탈리아 입장에는 대재앙이었다. [[12.7mm]] [[M2 브라우닝 중기관총]]은 SM. 79를 찢어버리는데 충분했고 호위기들조차 버티질 못하는 판이었다고 한다.[* 근데 노련한 파일럿들은 [[CR. 42]]를 타고 선회전을 유도해서 잡아내곤 했다고 하나, 이러면 폭격기 호위는 물 건너간 이야기다.] 결국 SM. 79는 저고도 비행을 해서 폭탄을 던지고 후딱 도망치거나 하는 식의 운용을 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북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운용을 한 것은 [[엘 알라메인 전투|2차 엘 알라메인 전투]]에서 후퇴하면서 독일군을 엄호하기 위해 목숨걸고 이탈리아 파일럿들이 영국군과 미군은 공습한 것이라고 한다. 이후 [[북아프리카 전선]]이 무너진 이후로는 [[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]]때 몇 대가 출격했다가 격추되고 이탈리아 항복이후에는 새 주인을 찾아가거나 민수용으로 쓰이게 된다.[* 일단 폭격기로써의 마지막 출격은 [[안치오 상륙작전]]으로 남아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